류태호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최근 LG화재배구단 신영철 감독의 선수 폭행 사건이 논란이 된 가운데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지난달 26일 '사건 책임자 퇴출'과 '체육계 폭력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 체육계의 폭행이나 구타 사건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쇼트트랙 선수들의 구타 폭로 사건에서도 보듯이 많은 이들이 언론 보도에 경악했다. 그러나 체육계의 관행이려니 하는 외부 시선의 한계도 역시 벗어버리지 못했다. 사건이 날 때면 그때 뿐, 비슷한 종류의 사건은 다시 마주하기 일쑤였다.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선수와 학부모, 교사(감독ㆍ코치)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스포츠계에서 일반 선수들이 구타를 당한 경험이 78.1%에 달했고, 58.4%의 선수들이 일주일에 한번 이상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타는 단위 운동부에서 뿐 아니라 국가대표팀까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태를 개혁하자며 체육계 내에서 공식적인 문제와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심에 체육시민연대가 있다. 체육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체육시민연대는 올 해 선수 구타 문제 등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한 활동에 전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법· 제도 장치 마련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벌백계형인거죠. 단지 관행이나 구조의 문제로 돌리다보면 또 다시 유야무야될 수 있습니다. 체육계 구타와 폭력은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되는 문제입니다."
체육시민연대 류태호 집행위원장(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은 "체육계 내에도 신 감독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는 동정론이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라면 사건이 또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제 학생과 선수의 인권을 바로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올림픽을 국위선양의 기회로 보고 운동선수 양성, 메달이 곧 국력이 되는 역사만을 살아왔거든요. 최고의 기량을 내기 위해 가혹한 훈련을 시켜야하니 선수의 인권이나 학습권은 당연히 배제된 거죠."
류 교수는 여기서부터 체육계 전반의 전근대적 문제점들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선수를 둘러싼 집단, 코치, 감독, 학교, 정부 당국까지 모두다 비교육적으로 연대한 거죠. 그 가운데 구타나 심판 매수 등 폭력사건과 돈 문제가 연루된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요. 매스컴을 통해 폭로적으로 보도되다 보니 스포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더해지고요. 악순환이죠."
홍덕기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이틀의 한번 꼴'이라는 표현으로 체육계 내 폭력의 심각성을 거론했다. "언론보도와 단체에 제보 들어오는 것만 스크린 해도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번 꼴이거든요. 지금껏 그 만큼 체육계 내 폭력이 관행적으로 계속돼 왔다는 거죠."
"이런 구조에서 우리 아들 체육 시키라면, 절대 안 시킬거다"라고 말할 만큼 체육계의 현실에 대해 직선적으로 내치는 류 교수도, 구타만 없어져도 체육계 내에 전근대적 요소들을 반감시킬 수 있는 고리가 풀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구타가 없어지면 일단 감독과 선수의 관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체육시민연대는 체육계 폭력근절, 선수 인권 향상과 함께 1교1체육관 지어주기 운동, 북한어린이 '공'보내주기, 학교운동부 바로세우기 학부모 연대 구성, 전국체전 구조개선 위원회 등 대중적 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6.15 공동준비위에 체육분과가 처음 독립적으로 생겨 오는 7월 남북한 체육인 한마당을 제안하고 남북 민간 체육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헬스클럽으로 달려가겠어요. 시민들의 일상에서 체육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는데, 정책은 그에 역행하고 있죠. 그런데 그걸 되찾는 게 시민의 권리라는 것조차 인식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류 교수는 "체육은 선수들의 것만이 아니"라며 "삶 속에서 스포츠가 문화라는 인식을 하고, 체육을 대중에게 돌려주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최문주 기자 cmjoo@ngotimes.net
체육시민연대는
체육계에서 유일하게 NGO를 자임하고 나선 단체다. 지난 2000년 고교생 수영 대표선수 장희진씨가 학습권을 요구하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면서 체육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때 장희진 선수 구명을 위한 체육교수들의 서명운동이 계기가 돼 체육개혁을 모토로 2002년 체육시민연대가 공식 창립했다.
대학체육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됐지만, 주원홍 삼성증권 테니스 감독(공동대표), 나진균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사무총장(운영위원) 등 현장 종사자들도 눈에 띈다.
체육시민연대는 창립 후 체육관련 국정감사 모니터링 활동 등을 비롯해 지난 2003년 천안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건 이후에는 합숙소 폐지와 체육제도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1인 시위 등을 벌이기도 했다.
올 해 초에는 대한체육회 선거 사상 처음으로 후보정책비교자료집을 내고 합동토론회도 성사시키는 등 체육계 조직 개혁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올해의 주력 사업으로 대한체육회로부터 대한올림픽체육회(KOC)를 분리해 독립시키고,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통합을 뼈대로 한 체육기구의 합리적인 개편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최문주 기자
